티스토리 뷰



숲 속의 작은 집 - ‘ASMR’

 

  ASMR을 주제로 한 TV 컨텐츠가 방영이 될 만큼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과 소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나의 ASMR은 무엇일까?”

1차원적인 답을 하자면, 6월과 7월의 이맘 때쯤, 깻잎, 상추, 고추 등이 잔뜩 심어진 밭에 소나기가 떨어지는 소리이다. 대학 진학 전까지 듣고 자란 이 빗소리는 도시의 소나기와는 다르다. ‘투투툭 투투툭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아닌, ‘두두두 두두두~’ 포근한 흙이 깔린 땅바닥과 양탄자보다 더 부드러운 나뭇잎들에 떨어져 귀를 어루만져주는 소리다. 대학 진학으로 도시로 올라온 나에게 이 소리는 기억 속 깊이 간직된 안정제 같은 소리이며, ‘언제쯤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그리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내면 깊은 곳을 울리는 나만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또 다른 의미의 ASMR이 나를 자극한다. 바로 나의 마음 속의 수많은 울림들, 나의 꿈과 열정이 내는 소리들 이다. 학창 시절, 어떤 어른들은 이 소리에 집중하는 나를 보며 너무 창 밖만 바라보지 마라.’,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며 걱정 하셨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오늘의 신호진이 존재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과연 신호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떠한 최후를 맞아야 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을 끌어내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내 마음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에 휩쓸려 기뻐하고, 행복하다 우울하기 일쑤였다. 정확히 내가 나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할 수 없었기에, ASMR처럼 생각했던 마음의 소리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끔찍한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질문의 맥을 잡기 시작한 때는 대학을 진학한 후 이다.

사실 질문의 맥을 잡기 전, 소망과 꿈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멋있어서, 시간이 지나며 어떤 직업인지 알아갈수록 누구보다 앞서 어떠한 것을 생각해내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관련 학과를 진학 할 수는 없었다. 대학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그 때까지도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생아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법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로 구성된 법경학부에 진학하게 되었고, 2학년이 되어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때 인생을 바꾸는 결심 하나를 했다. 바로 부모님 몰래 의류학과를 제2전공으로 선택한 것이다. 과연 대학 진학 후 어떤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하기나 해  그레이 (feat. Loco)

 

이 노래를 듣던2013년의 어느 날, 나는 2004년의 나를 떠올렸다. 부모님의 곁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싶은 나, 나에 대해 맥락 없는 수 많은 질문을 던졌던 그 시절을 말이다.

법경학부에 진학 후, 생각보다 즐겁게 공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개론 수업과 교양 수업을 듣는 시기였는데, 한 학문에 대한 전체적인 컨셉은 어떠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처럼 체계화 되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 때 처음 컨셉’, ‘기획’, ‘디자인 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재미있는 상황 하나가 벌어졌다. 다음 카페가 유행하던 시절, 한 카페에 올린 나의 글을 보고 라디오 DJ  PD 라는 분에게 방송작가 제의를 받은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여러가지로 많이 의심했을 것이다. ‘경력도 없는 나에게, 작가 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도대체 얼마를 주려고?’ 하지만 그 때는 여지없이 내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이건 꼭 해봐야 한다. 그냥 하자.’ 사실 요즘 말로 열정페이보다 못한 값의 식사 한 끼에 감사하며 방송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매일이 프로그램 속 코너의 컨셉 회의 였다. 코너 이름을 짓기 위해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오프닝은 어떻게 할지 그날 그날의 이슈들을 리서치 하고, 노래를 어떤 노래를 어떤 시점에 틀지 끊임없이 회의했다. 하지만 이제 갓 컨셉 기획을 안 2004년의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때는 내 관심의 폭도 좁았고, 깊이도 깊지 않아 모든 것이 미숙 하기만 해 내 원고는 계속해서 퇴짜를 맞아야 했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많이 한 것은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그대로 받아 적어 보는 것,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 짧은 코너를 써보는 것, 그리고 명언을 이용해 엔딩을 써보는 것이었다. 학교를 휴학하면서 까지 꼬박 2년을 매달렸고, 건강상의 이유로 복무한 공익근무요원 시절에도 글쓰기를 쉬지 않았다. 제대 후에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작은 방송국의 작가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사이 케이블 방송의 신곡 소개 프로그램의 원고를 맡기도 했으며, 한 지역 시장의 홍보 영상의 만드는 프로젝트의 작가로도 경험을 쌓았다. 원고가 써지지 않을 때는 미친 듯이 괴롭고 초조했던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내 원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게 7년 가까이 방송작가로 일할 때쯤, 졸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 왔다. 경제학과 수업과 의류학과 수업을 넘나들며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성적이 우수했던 쪽은 항상 의류학과 수업이었다. 일과 학업의 균형에 있어서도 학업을 마치는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방송작가를 계속할 것인가? 졸업과 함께 패션 관련 업종으로 취업을 할 것인가?

 

 

하트시그널  나의 마음은 어느 곳으로??

 

졸업하기 1년 전 쯤, 방학동안 친구들과 경험 삼아 삼청동에서 노점상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파출소 근처의 언덕이었고, 우리는 작은 소품을 팔기로 했다. 우연히도 그 곳에 신발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성수동에서 제작된 수제화를 파는 곳이었다. 당시 패션의 완성은 슈즈라는 키워드와 함께 슈즈 디자이너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만약 내가 브랜드를 런칭한다면, 옷과 가방과 신발을 전부 디자인하는 토탈 브랜드를 런칭하겠다고 계획한터라 그 신발 가게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발 가게의 오너 디자이너 또한 우리가 만들어 팔던 소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오너 디자이너에게 슈즈 디자이너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게 됐고, 과감히 승낙 했다. 졸업하기 전 2번째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학창시절 마케팅 수업을 두 번에 걸쳐 들었다. 한 번은 의류학과에서 개설한 패션마케팅 수업을, 다른 하나는 경영학과에서 개설한 마케팅 수업이었다. 두 수업 모두에서 마케팅 전략 및 계획을 비롯해 브랜드 차별화와 포지셔닝 등에 대한 강의이었다. 한 수업에서는 패션에 초점을 맞춰, 다른 한 수업에서는 산업 전반에 걸쳐 초점에 맞춘 것일 뿐 그 핵심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관심이 커질 때쯤, 직접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타겟층을 분석하고, 해당 시즌의 트렌드는 어떠한지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조사를 해 제품을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보는 과정이 지루할 틈 없이 새롭고 즐거웠다.

졸업 후에는 홈쇼핑 상품을 기획하는 회사로 이직해 최근까지 근무하고 있다. 홈쇼핑 방송 PD, 쇼호스트와 커뮤니케이션 하기위해 상품기술서 라는 것을 쓰게 되는데, 여기에는 주로 상품의 컨셉 및 특징, 그리고 강점과 다른 상품과의 차별점이 담기게 된다.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관련 경험을 조금은 더 심도 있게 쌓을 수 있었다.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에일리 (도깨비 OST)

 

과연 신호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떠한 최후를 맞아야 할까?’

 

방송작가와 디자이너라는 두 개의 직업을 거치며 이 질문들이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다. 2시간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 6개월 단위로 나눠서 진행되는 컬렉션의 한 디자인! 모두가 기획의 연속이고 컨셉을 다듬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이 과정을 10여년간 거치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한 컨텐츠(혹은 디자인)인가?’, ‘이 컨텐츠(혹은 디자인)에 내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나는 이 결과물들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잘 하고 있는가?’ 이러한 고민이 없었다면 나의 글은 누구도 들을 수 없었고, 나의 신발은 누구에게도 신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 할 수 있는 나이에 3번째 커리어 전환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 SCHOOL에 지원한 직접적인 계기는, 단지 생각만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가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디자이너라는 틀 안에 갖혀 있는 현재로써는 브랜드 마케터로서 역량을 온전히 쌓아 발휘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랫동안 치열하게 나와의 대화, 앞에서 예로든 나의 ‘ASMR’에 귀 기울인 결과, 나는 어떤 직업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항상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갈 것인지’, ‘그 끝엔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국 나를 브랜드 마케터 로 이끈 듯 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직진이라면 오직 직진만 해온 인생이다. 내가 꿈꾸는 미래에 더 다가가기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면 나이라는 숫자는 다 지워버리고 나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앞선 두 번의 직업이 무모한 도전이었다면, 이번에는 확실한 목적을 가진 도전으로 전력을 다 할 것이다. 매 년 사람들이 언제 내릴지 모를 첫 눈을 기다리듯, 사람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한 기대감을 충족할 기획으로 브랜드를 가치 있게 만들어 보고 싶다.

 

 

Simple is the Best~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단순하지만 묘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콘텐츠!


브랜드 마케터가 된다면 이와 같은 모토를 가지고 일을 하고 싶다.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진로를 세분화해 본다면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 상 패션 분야가 가장 잘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공부하며, 내면의 소리와 시대의 요구,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면 패션 분야를 포함한 다른 산업군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지금까지의 리서치와 공부는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명확한 맥을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니타스 브랜드에서 출간한 브랜드 인문학 인문학적 브랜드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엘레멘트컴퍼니의 최장순 대표가 쓴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을 읽으며 브랜드 기획과 관련된 개념을 조금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중요도를 인지하고, 엑셀커리어의 오픈 강의를 통해 구글 애드워즈, 페이스북 광고관리자를 접해보기도 했다. 더불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디지털 매체에 올라온 광고들을 조금 더 관심있게 지켜보게 됐다. 

패스트캠퍼스의 디지털 마케팅 SCHOOL을 통해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인사이트가 조금더 선명하고 날카로워지길 희망한다.



댓글
댓글쓰기 폼
공지사항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2,924
Today
0
Yesterday
7
링크
TAG
more
«   2019/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